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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프라우스의 사람


누군가가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란 말을 하더군요. 증오하는 것도 감정이 남아 있으니 가능합니다. 하지만 무관심해지는 것은 상대에 대한 아무런 느낌도 남아있지 않기에 일어나는 일일 겁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들 중 그 반대말을 생각해보면 그 의미가 좀 더 분명해지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도 비슷한 적용이 가능합니다. 권위를 무시하도록 요구받으며 자란 y세대와 밀레니얼들이 부모가 되어가는 요즘, 아이들이 천방지축 뛰어다녀도 부모들이 상관하지 않는 모습들을 봅니다. 왜 그냥 놔두느냐 넌지시 물으면 애 기죽을까봐 그런다지요. 아이 기죽이지 않으려고 아이들의 행동을 교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염려도 되지만, 남의 아이들 교육에 참견할 수는 없는 터라 지나칩니다. 기죽은 아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아마 내 아이가 자신감 있는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일 겁니다. 하지만 기죽은 아이의 반대말이 자신감 있는 아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기죽지 않음이 곧 긍정적인 것만을 의미한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어에는 프라우스(πραΰς)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흔히 “온유함”으로 번역하지만, 사실 이 온유함은 약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야생말과 훈련된 말이 갖는 힘은 사실 비슷하지만 야생말이 갖는 힘은 관계에 있어 파괴적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같은 힘이 잘 다스려지고 조절될 때 갖는 부드러움은 기가 죽어 지내는 불쌍한 동물의 모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부드러움은 사실 힘이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부드럽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 이런 부드러움을 프라우스라고 합니다. 기죽지 않게 자란 사람일수록 나중에 더 기가 센 사람을 만나면 꼬리를 내리고 비굴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드러운 사람, 그러나 실력이 있는 사람은 더 탁월한 사람을 만나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 차이는 자신감과 교만의 차이와 비근합니다. 우리 아이가 자신감 있는 (자신의 실력을 아는) 사람이 되길 원하지만 교만한 (자기로 가득 찬)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그러려면 거친 성품을 말과 훈육으로 조금씩 다스려주는 부모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밥 먹다가 뛰어다니지 않는데 먹던 음식 내버려두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공공 장소에서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양 떠드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 부모들이 조금 더 아이들에게 신경써주고 아이들의 야성을 다스려 주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아이의 기를 죽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가 프라우스를 가진 사람, 힘과 실력이 있지만 부드러운 사람으로 키워내라는 것입니다. 결국 실력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골고루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고, 우리 한인들의 사회가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Veritas Montessori Academy 김철규 원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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