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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공부 도와주는 아빠/엄마


유학 생활이 길었던 저는 저희 집에서 아이들 과외 공부를 많이 시키곤 했습니다. 제 공부도 해야 하는데 하루 세 네 시간씩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쉽진 않았습니다. 그건 제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아빠가 집에 있는데 얼굴을 보지 못하니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면 문 앞에서 어슬렁거리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공부하던 아이가 문을 열고 나와 떠나면 이 때다 싶어 들어와서는 책상에 얼굴 마주보고 앉아 재롱을 부렸습니다. 그러다가 한 세 살 때부터는 나이에 맞는 워크북을 사다가 공부시키기 시작했는데 그걸 그렇게 좋아하더군요. 앞에 앉아 온갖 표정 지어가며 재잘거리며 공부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사진을 많이 찍곤 했습니다. 다만 유독 제 딸은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공부보단 대화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쏟아내는 온갖 얘기들을 들어주고, 공부 후에는 보드 게임도 해줘야 했습니다. 피곤해서 눈이 가물가물한 데도 그렇게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10학년이 되는 딸 아이를 지금도 매일 공부시키려 해보지만 쉽진 않습니다. 아침 5시부터 일을 하니 일단 제가 집에 들어갈 때쯤이면 상당히 피곤합니다. 공부는 선생의 인내심이 가장 중요한데 피곤한 상태에서 가족에게 인내심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물론 화를 낸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냥 앞에서 졸거나 마음이 일에 가 있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돈 받고 가르치는 아이들에겐 그렇지 하지 못하는데 자식이라고 마음이 편한가 봅니다. 그래서 종종 앞에 앉아 졸고 있는 아빠를 보며 “You can go to bed.”라고 말해주는 딸아이가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이 앞에서 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 시간을 계속 갖고 있습니다. 공부를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공부나 성적을 강조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동기 유발이 된 듯합니다.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고민하고 있는 문제도 자주 얘기합니다. 물론 제가 사정이나 상황을 정확히 몰라 대답을 제대로 잘 해 줄 수 없는 문제도 종종 있지만 그렇다고 제가 무용지물은 아닙니다. 혼자 떠들 때 추임새만 좀 넣어주면 알아서 결론 내리고, 내린 결론이 좋은 생각이라 스스로 감탄하곤 하니 잘 들어주기만 해도 유익이 많은 것은 분명합니다. 정기적으로 얼굴을 마주 대고 앉아 있으니 아이도 편하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상담가들이 하는 일이 이런 것이지요. 잘 들어주고 추임새 맞춰주고, 좀 더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자신이 생각을 정리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뿐입니다. 가끔은 저에게 ‘자신은 실력이 안 되어 자식을 가르칠 수 없는데 좋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부모님들도 있지만 저도 모르는 게 많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어설픈 도움보다는 스스로 찾아갈 수 있게 하되, 늘 옆에서 지켜봐 주는 존재가 더 소중한 법입니다.

혹시 자기 자녀의 공부를 가르쳐 보겠다고 마음 먹는 부모님들을 위해 이런 것들만 피하시라 권합니다:

· 아이 문제 푸는 동안 핸드폰 체크합니다 (그냥 안 하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 이해하지 못하면 왜 그걸 모르냐고 답답해 하거나 인상을 씁니다 (아이가 억지로 공부를 하긴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학습을 좋아하게 되기는 힘들 겁니다. 지식과 불안을 함께 학습하는 것이지요).

· 그래도 아직까진 내가 더 공부 많이 한 사람이니 내 방식대로,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것을 기대합니다. (생각 없는 아이 만드는 방법입니다).

· 성적이 잘 안 나오면 왜 그랬냐고 묻고, 100점 받으면 몇 명이나 100점 받았냐고 묻습니다 (늘 남과 비교하는 괴로운 인생 살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Veritas Montessori Academy 김철규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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