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학대당하거나 부부 싸움을 자주 목격하면, 우리 아이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요?


학대받은 경험이 있는 분들을 가끔 봅니다. 학대당한 지도 모르고 자랐는데 훗날 깨닫게 된 경우도 많겠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자기가 학대당했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경우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학대를 기억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유아기 당한 학대는 본인의 인식 여부와 상관없이 한 사람의 인생에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깁니다.

학대당하는 아이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학대는 일단 무척 고통스러운 경험입니다. 어른들이야 조금만 아파도 애드빌이나 타이레놀을 먹고, 그것도 모자라 아편 계통의 강력한 진통제도 처방받아 복용하는데, 학대당하는 아이들은 고통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합니다. 그나마 학대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는 고통과 자신을 정신적으로 분리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환상의 세계에 빠질 수도 있고, 인생에 대한 처절한 비관론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탈출하든 부정적인 방법으로 탈출하든, 학대당하는 아이가 끊임없이 반복 훈련하는 것은 자아 인식에 대한 거부입니다. 느낌을 부정합니다.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과 감각 경험을 부정하는 훈련을 거듭합니다. 그래야만 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참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보존의 본능이 고통을 느낄 수 없는, 고통 인식 능력을 잃어버리도록 스스로를 몰아갑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그 중 하나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고통스러워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마취제를 맞았을 때 외과용 메스로 잘라도 별 느낌이 없는 피부처럼, 마음은 그렇게 둔해져 버립니다.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 그 느낌 없는 살을 잘라보고 싶지만—그래서 실제로 자기 절단 Self-mutilation을 저지르기도 합니다—효과가 없습니다. 무언가 느껴 보려고 온갖 종류의 중독물질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된 것이 자신의 잘못은 분명 아니건만, 마음에 붙어버린 굳은 살은 좀처럼 떨어질 줄 모릅니다. 아니, 굳은 살처럼 한 부위에만 생긴 둔감함이면 차라리 나을텐데, 이건 피부 전체에 퍼진 무감각입니다.

한편, 부모의 잦은 싸움을 보고 자란 아이의 마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부모의 잦은 싸움은 먼저 아이에게 불안감을 가져오고,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것에 마음을 쏟게 합니다. 대개 친구나 미디어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비난도 함께 경험합니다. 부모의 싸움이 꼭 자기가 잘못해서 생긴 것처럼 여기게 되는 죄책감으로 사무칩니다. 동시에 부모를 기쁘게 할 방법을 찾느라 자신의 감정과 느낌은 숨기는 경험을 거듭하기도 합니다. 이 아이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느낌을 부정하지는 않을 겁니다. 불안함과 혼동을 느낄 겁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인식하는 것보다 부모를 기쁘게 해주고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은 뒷전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과 느낌에 대해서는 늘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입니다. 늘 다른 사람들이 우선입니다. 쉽게 말해 ‘People Pleaser’가 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충분치 않은 것 같아 자기를 탓합니다. 뿌리 깊은 죄책감입니다. 나이 들어 세상 떠나기 전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늘 다른 사람의 기대만 신경쓰며 살아왔던 지난 날에 대한 후회가 누구에게나 많겠지만, 이런 사람이 느끼게 될 후회는 훨씬 클 겁니다.

학대가 됐듯 잦은 부부싸움이 됐든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부정해야만 견딜 수 있는 오랜 기간의 시간을 보낸 사람이 좋은 인간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부정하는 것으로 어린 시절 수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감정과 느낌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집중력 장애, 활동 장애 등의 문제로 다른 사람의 감정과 느낌을 인지하기에는 너무 ‘바빠서’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학대나 잦은 부부 싸움을 경험하며 자란 사람들이 갖게 되는 관계의 문제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 아이, 학대와 부부 싸움으로부터 보호해야 합니다.

베리타스 몬테소리 유치원

김철규 원장

Featured Posts
Recent Posts
Archiv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