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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된 무기력을 활용한 우리 아이 행동 지도


어릴 적 시골에 갔다가 작은 아버지네 소를 끌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 덩치 큰 녀석이 고삐를 당기자 스르르 끌려오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고삐를 끼워 두어 그렇습니다. 코에 끼워진 고삐는 당기면 소가 아픕니다. 그러니 그 힘쎈 소도 통제가 가능합니다. 어린 아이들도 그 큰 소를 이리저리 끌어당길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코끼리는 어떻게 통제할까요? 코끼리는 코에 고삐를 낄 수가 없으니 다른 방법을 써야 합니다. 코끼리는 너무 힘이 세서 사람이 제어할 수 없으나 어릴 때부터 훈련하면 가능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어린 코끼리의 목에 밧줄을 묶고 튼튼한 기둥에 연결해 두는 겁니다. 아직 어린 코끼리는 밧줄을 끊을 수도, 기둥을 뽑을 수도 없으니 밧줄이 당겨질 때마다 행동이 제한됨을 느낍니다. 어린 코끼리에게 자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유는 일정한 범위 내로 통제되어 있습니다. 이 훈련이 장기간 지속되면 몸이 다 자라 왠만한 밧줄을 끓을 만한 힘이 생겼을 때에도 코끼리는 밧줄을 따라 갑니다.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을 활용한 결과입니다.

학습된 무기력은 긍정심리학으로 유명한 유펜(UPenn)의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에 의해 유명해진 심리 이론입니다. 고통을 당할 때 버튼을 주어 고통을 멈추는 방법을 가능하게 열어준 개와, 그런 방법을 제공받지 못한 개가 어떤 식의 행동 패턴을 보이는지에 대한 연구입니다. 물론 첫번째 그룹은 버튼을 눌러 고통을 멈추는 방법을 배웠고 활용했습니다. 두번째 그룹은 통제의 방법이 없어 고통을 다 감내해야 했습니다. 다음 이어지는 실험은 같은 두 그룹의 개들에게 고통을 주되, 이번에는 버튼 대신 담을 넘어갈 수 있게 한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그룹은 고통이 가해지자 담을 넘어 피해간 반면 버튼이 주어지지 않았던 개들은 담을 넘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넘지 않고 고통을 그대로 받으며 앉아 있었습니다. (실제 실험은 이것보다 조금 더 복잡합니다.) 무기력이 학습된 것입니다.

학습된 무기력이 주는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는 우리 삶에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을 때 우리가 안정감과 행복을 느낄 가능성이 훨씬 많다는 점입니다. 선택할 자유가 주어진 사람들이 인생을 더 살 만하다고 느낀다는 것이지요.

이 개념은 자녀 교육, 특히 아이들의 행동 교정에 두 가지 방법론을 제공합니다. 첫째는 아이들에게 새끼 코끼리를 묶은 밧줄과 같은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새끼 코끼리의 목 대신 네 다리를 모두 묶어 두었다면 그 코끼리는 훈련은 커녕, 우울증에 빠졌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를 다 묶을 수 없고, 묶어서도 안됩니다. 아이를 가둬 놓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자유를 주면서도 ‘이것은 꼭 지켜야 한다는 규칙’ 한 두 가지는 있어야 합니다. 이것들을 지키는 습관을 들이게 하면, 그 준법 정신이 다른 분야로 전이(transfer)될 수 있습니다. 또 이런 훈련은 부모의 권위를 살려 두기 위한 끈이 됩니다. (권위주의는 나쁜 것, 권위는 필요한 것이지요.)

둘째, 잘못된 행동을 교정할 때도 선택권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행동과 아이가 싫어하는 행동 사이에 선택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는 둘 다 싫어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더 싫은 것보단 덜 싫은 것을 선택하게 되니, 아이는 부모의 요구를 선택하게 되고, 따라서 아이의 행동이 교정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은 아이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가르치면서도 선택권을 줌으로써 자립심(autonomy)을 강화하며, ‘이거 안하면 너 큰일나!’ 하는 식으로 위협하는 상황도 예방해 줍니다. (참고로 “A할래 B할래?”라고 묻는 부모에게 “나는 C가 좋아요”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수준의 반항이 가능하려면 적어도 중학생은 되어야…^^)

아이를 훈련하는 것, 지혜가 필요합니다. 단순히 부모가 원하는 대로만 아이가 자라가길 원하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겁니다. 바람직한 행동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에 대한 존중과 자립심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니 그런 모든 목적들을 다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계발해 나가야 합니다. ‘학습된 무기력’—적절하게 활용해볼 만합니다.

Veritas Montessori Academy (VMA)김철규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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